디즈니랜드 근처 사는 모녀 이야기
美 사회 그늘 아이 시선으로 전해
마약·아동 학대·성범죄 등 다뤄
환상적 엔딩…감독 전하는 선물

모두들 한 번쯤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꿨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팍팍하고 지치는 지금, '기회의 땅'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면 나도 부와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미국몽'의 중심에는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상이 자리 잡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은 마천루가 솟아있는 뉴욕, 전세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화려한 일상도 무시할 수 없다.
디즈니랜드는 미국의 환상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혹자는 일생의 소원을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으로 꼽을 만큼 디즈니랜드는 많은 이들에게 꿈과 환상, 그리고 미래를 그대로 실현하는 마법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1971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개장한 '월트 디즈니 월드'는 '매직 킹덤'을 포함한 테마파크와 워터파크, 리조트와 상점가 등이 들어섰다. 이곳은 세계의 모든 놀이공원 중 방문객 수와 면적 모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대 싱글맘 헬리는 여섯 살 딸 무니를 홀로 키운다. 플로리다의 월트 디즈니 월드가 위치한 올랜도 외곽의 모텔 '매직 캐슬'에서 살고 있는 이 모녀는 근처 고급 리조트에서 호객행위를 하다 쫓겨나거나, 지나가는 헬기에게 손가락 욕설을 하는 등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킨다. 무니는 친구 스쿠티, 디키와 함께 주차된 차에 침을 뱉는 기행까지 저지르는 '금쪽이'이기도 하다.
매직 캐슬 모텔은 디즈니랜드와 닮은 듯 다르다. 파스텔톤의 연보랏빛으로 칠해진 모텔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에게 곳곳이 놀이터이며, 모텔 매니저 보비 아저씨는 아빠와도 같지만 가끔은 너무 간섭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모든 이들의 꿈 디즈니랜드 근처에 사는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여섯 살 아이 무니와 호텔 매니저 보비의 시선에서 가까이 또는 멀게 전달한다.

무니와 모텔의 아이들은 항상 범죄에 노출돼있다. 같은 모텔에 투숙하는 글로리아는 공용 수영장에서 나체로 버젓이 누워있으며, 야외 벤치에는 소아성애자가 서성이기도 한다. 음주와 마약은 예삿일이며, 해가 지면 다툰 남성들이 차 범퍼로 서로를 치고받는다.
이럴 때마다 보비는 때로는 아빠처럼, 매니저처럼, 그리고 '우리'처럼 아이들을 지킨다.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와 같이 보비는 아이들이 때론 밉고 성가시지만 가끔은 귀여워하며, 무엇보다도 커다란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니 일당들은 악동 같은 기행을 계속한다. 폐가의 벽난로를 찾은 그들이 붙인 불씨는 결국 집 한 채를 몽땅 태워버리는 화마로 번진다. 자잘한 장난을 수도 없이 저지른 무니 일당이지만, 무니와 스쿠티는 왜인지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낀다. 어쩌면 여섯 살 아이의 눈에도 명백한 범법 행위는 처음이었고 일이 커진다면 엄마 헬리가 그토록 피하던 아동국 직원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업도 없이 거리를 전전하며 호객 행위로 1천 달러가 넘는 모텔 숙박비를 겨우 지불하던 헬리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매춘이라는 선택을 한다. 감독이 이를 무니의 시선에서 표현하는 방식은 특별하다. 헬리가 함께하던 목욕시간이 어느 순간부터 무니 혼자만의 시간으로 바뀌고, 혼자서 두 쌍의 인형을 가지고 노는 장면으로 전환한다.

헬리가 그토록 피하던 아동국 직원은 결국 헬리와 무니의 방문을 두드리게 된다. 아동국 직원은 무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지만, 무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엄마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무니는 헬리가 좋은 엄마가 아님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의아했던 점은 헬리가 무니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에 있었다. 무니는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모텔에서 잠을 자며 정기적으로 방을 바꿔 살고, 인스턴트 음식과 무료 배식 빵을 먹는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친구들과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이 하루 일과다. 헬리는 무니의 비도덕적인 행동에도 훈육을 시키기는커녕 방관하거나 두둔하기도 한다.
헬리와 무니, 모녀보다는 친구 사이에 가까워 보이는 이들의 관계에서 엄마가 딸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헬리가 아동국 직원에게 조사를 받기 전, 빗속에서 함께 뛰노는 이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어쩌면 어리석을지도 모르지만, 헬리는 무니가 없다면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을 것이 분명하다. 무니는 헬리의 인생에서 최후의 보루처럼, 실탄이 발사되기 전 탄도의 궤적을 빛내는 예광탄처럼, 고사리 손으로 난간에 매달린 엄마의 손을 꿰어 잡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로써 무니와 잰시, 스쿠티와 디키는 더이상 귀찮고, 짜증 나며, 시끄럽고, 건방진 아이들이 아니게 된다. 보비가 다달이 월세를 밀리는 헬리를 모질게 대하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뛰놀며 일을 방해하는 무니를 쫓아내지 못하는 것은 그가 헬리에게서 무니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엔딩은 감독이 무니에게 주는 선물이다. 무니가 잰시와 함께 디즈니랜드로 뛰어가 신데렐라 성 앞에서 수많은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현실이 아님을 관객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디즈니랜드까지 짧은 다리로 단번에 뛰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디즈니랜드까지 가는 방향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몇 백 달러나 하는 티켓의 검표를 피해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엔딩신의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무니도, 잰시도, 어렸던 헬리에게도 꿈과 희망은 존재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happily ever after)' 자격이 있으니까.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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