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마을 탐방 프로그램
금호동 병천사·운천사 방문
얽힌 옛 이야기와 역사 배워
마을 유산 소재 연극도 선봬
"쉽고 재밌게 동네 알려줄 것"

"부모님이랑 동네를 돌 때마다 '저기는 뭐 하는 곳일까?' 하고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어요! 우리 마을에도 문화재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자랑스러워요."
초여름의 선선한 바람이 나부끼던 날, 광주상무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은 교실 문을 열고 나와 '마을'이라는 넓은 교실로 향했다.
아이들이 참여한 프로그램은 마을도서관 다락이 진행하는 '마을 돌아보기'였다. 매일 같이 지나다니던 우리 마을의 숨겨진 역사적 장소들을 직접 탐방하며 그 의미와 가치를 배우는 활동이다.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문화해설사가 초등학교 저학년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고, 흥미로운 옛이야기를 곁들여 어린이들의 이해와 흥미를 끌어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날 상무초 어린이들이 방문한 곳은 금호동의 병천사와 쌍촌동의 운천사. 두 곳 모두 학교에서 도보로 10분 안팎의 가까운 거리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광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병천사와 운천사의 마애여래좌상에 얽힌 옛날이야기들과 그 숭고한 가치를 알아보고, 우리 마을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까워진 문화재
흔히들 '사'자가 들어간 장소는 절로 생각하곤 하지만, 병천사는 절이 아닌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치욕을 당한 후 선조들의 절의와 애국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1910년 지방 세력가 지응형이 지은 사당으로, 고려시대의 정몽주, 지용기, 조선조의 정충신, 지여해, 지계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상무초에서 출발해 병천사에 다다른 어린이들은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병천사 입구에 세워진 비석 중 하나는 '제하상모자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인품이 뛰어났던 지응형 선생은 당신의 집에 며칠 머물렀던 손님들도 잊지 않고 생각했어요. 지 선생의 인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가 이 제하상모자비랍니다."
이해를 돕는 일러스트와 함께 듣는 옛이야기에 어린이들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모자가 지응현 선생의 댁에 찾아와서 짐을 맡겨두고 외출을 했어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들이 맡겨둔 짐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거예요. 짐에 뭐가 들어있었을까요?"
"음식이 들어있어서 상한 것 같아요!"
"맞아요. 목화와 쌀, 그리고 새우젓이 들어있었어요."
제하상모자비는 새우젓 장수 모자에 얽힌 이야기다. 1900년대 초, 지응현 선생의 집에 신세를 지러 온 어느 새우젓 장수 모자가 짐을 맡겨두고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지 선생은 이들이 죽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들을 기리기 위해 수십 년이 넘도록 매해 제사를 지냈다. 지 선생이 노쇠하자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못함에 유감을 느끼고 그들의 넋을 계속해서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 제하상모자비다.
역사와 옛 건축물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임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더해지니 해설 중간중간 불쑥 등장한 퀴즈에 어린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너도나도 대답하기 시작했다.

◆매일 지나던 곳에서 '고려의 숨결' 느끼다
병천사에 대해 짧지만 자세히 알아본 어린이들은 병천사에서 10분 거리인 운천사로 향했다. 이동하는 길에도 우리 마을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사당이었던 병천사와 달리, 운천사는 고려 시대에 지어진 절이다. 경내에는 높이가 2미터나 되는 거대한 마애불이 자리해있다. 운천사의 대웅전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은 광주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상으로, 자연 암벽을 다듬어 불상을 양각하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 전각의 형태를 갖췄다.
"여러분, 돌에 새겨진 이 부처님을 보면 느낌이 어때요?"
"엄청 크고 멋있어요!"
"맞아요. 귀도 정말 커서 어깨 위까지 닿아있죠? 당당하고 웅장한 느낌이 들어요."
마애여래좌상에 얽힌 전설은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와 연결된다. 무등산 원효봉 아래의 암자에서 수행하던 원효대사는 어느 날 백석산에서 빛이 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제자 보광 화상을 보내 그 빛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했다. 빛은 커다란 바위에서 솟아 난 것이었으며, 이를 알게 된 원효대사가 상서로움을 느껴 그 바위에 불상을 새긴 것이 마애여래좌상으로 전해내려온다.
이날 '마을 돌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유준 군은 항상 궁금해했던 것들을 알게 되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유준 군은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아서 항상 병천사와 운천사를 볼 때마다 뭐 하는 곳인지 궁금했고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오늘 들어갈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다"며 "제하상모자비와 마애여래좌상처럼 엄청 오래된 문화재들이 우리 마을에 있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도 이야기해 줄 것이다"고 말했다.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마을 탐방
광주 서구 금호동에 있는 마을도서관 다락이 운영 중인 '마을 돌아보기' 프로그램은 초등학교와 연계해 진행된다. 초등 교육과정에 맞춘 현장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기획돼 금호동의 역사와 문화를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마을 돌아보기'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은진 관장은 초등학생들에게 우리 마을의 자랑거리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장은 "앞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공공기관을 견학하는 '우리 동네 탐험일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공공기관이다 보니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없어 저학년의 눈높이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설명이 동반돼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며 "그래서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우리 동네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보고자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관장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해설을 진행하는 문화해설사를 양성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옛이야기를 통해 우리 마을의 역사와 문화재를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도록 도와 딱딱하고 무겁게만 느껴졌던 역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마을도서관 다락은 '마을 돌아보기' 프로그램 외에도 '해설사와 함께하는 연극', '우리 동네 탐험일지', '우리 마을이 달라보여요' 등 다양한 마을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 중 지난 2020년 12월 진행된 '해설사와 함께하는 연극'은 '극단이야기 꾼'과 마을해설사 6명이 함께해 병천사의 제하상모자비, 운천사 마애여래좌상, 향림사 불전사물 등 마을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연극을 선보인 무대였다.
이은진 관장은 "광주에서 계속 살았어도, 광주시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당장 우리 마을에 있는 문화재와 역사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어린이들이 역사의 매력에 빠질 수 있게 우리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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