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시선 중년 여성 내면 그려
몽당연필 깎듯 빚어낸 시어 눈길
치밀한 상상력·사유·함축적 서사

물의 흐름은 삶의 과정을 닮았다. 그래서 혹자는 물을 삶에 비유하기도 한다.
박자경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물의 습성'(문학들刊)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삶의 근원에 대한 열망을 물에 투영한 표제작을 비롯, 총 66편의 시를 4부로 구성했다.
"바닥을 숨기거나/깊이가 고이는/곳//뛰어내리고 싶으면/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하는/곳//돌멩이라도 힘껏 던져 보고 싶게/침묵하는/곳//네가 사는 집과/내가 찾아가는 길/어디메쯤//길을 막아서며/또 길을 열어주는/너의 습성"('물의 습성')
이 시에서 물은 삶의 본원을 간직한 정적인 장소('곳')로 등장했다가 결구에 이르러서 삶의 진리를 막거나 열어주는 동적인 대상('길')으로 탈바꿈한다. 자연과 인간의 이치를 물에 비유하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니, 이 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수사 대신 명징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사물이나 대상의 핵심에 다가가려는 시인 특유의 표현과 자세일 것이다. 그만큼 시인의 시적 연륜이 짧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삶에 대한 긍정의 시선이다. 시집에는 "다달이 썰물이 들고 밀물이 빠져나가던 내 몸에도/가끔 쿨럭이는 바람과 체기(滯氣)가 수시로 찾아오면서"('늙은 바다 홀통')라는 구절에서 보듯 폐경에 이른 중년 여성의 내면 풍경을 일상에 빗댄 작품이 적지 않다.
중요한 건 시인이 그것을 부정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긍정함으로써 조화로운 삶의 길을 모색하려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군더더기 없이 잘 빚어낸 단시들이다. "찢…이라는 글자에서는 상처가 보인다/찢고/찢기고/찢어발겨진/찢,에서는/숨죽여 흘러내리는 깊은 눈물의/바짝 마른 자국이 있다"로 시작하는 '찢'이나 "숱한 밤/베이고 깎인 몸"으로 시작하는 '몽당연필' 등이 그렇다. 일체의 감정을 찢어 내거나 정성을 다해 몽당연필을 깎듯 시를 쓰는 시인의 자세가 눈앞에 그려진다.
김규성 시인은 "박자경의 시는 웅혼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현실과 초현실의 접점을 줄타기 하는 치밀한 상상력, 직관적 사유, 함축적 서사를 장착한 시한폭탄이 독자의 레이더에 포착되는 순간, 내면의 광음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했다.

박자경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광주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 2005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첫 시집 '오래 묵은 고요'를 냈으며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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