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두명의 아버지를 둔 남자의 눈으로 본 분단

입력 2023.11.14 19:19 최민석 기자
정범종 작가 장편 '매사낭꾼' 출간
개인 현실 접목 남북분단 현실 응시
'텃밭' 통해 둘일 수 없는 믿음 설파
‘부정’을 긍정·사랑으로 바꾸는 작품
정범종 작가

남북분단은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 현실을 망각하고 산다.

그동안 소설과 동화, 희곡을 써 온 정범종 작가가 장편소설 '매사냥꾼'(문학들 刊)을 출간했다. 한마디로 '부정'을 긍정으로, '지배'를 사랑으로 바꾸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경색될 대로 경색된 남북의 상황을 떠올릴 때, '그래, 이런 소설이 있어야 해.'라고 하면서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남북의 문제를 나열하거나 그 해결의 방향을 웅변하지는 않는다. 만약 남북의 텃밭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만약 고립된 군인이 타지에서 매사냥꾼이 된다면 어떻게 매를 길들일까. 이런 호기심에 재미를 듬뿍 선사해주는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소설은 총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텃밭'이고 2부는 '초원'이다. 1부는 1991년 사고로 북방한계선을 넘게 된 한 군인의 이야기며, 2부는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후 몽골의 드넓은 초원에서 한반도를 잊고 매와 더불어 살아가는 매사냥꾼의 이야기다.

1부의 '텃밭'에서 주인공은 육군 대대장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친아버지는 인민군이었으나 법적인 아버지는 학도 의용군이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사실을 그는 어머니로부터 알게 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북한에 두 명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법적인 아버지만 받아들인다.

부하들에게 매의 눈을 가지고 적과 맞서라고 강조하는 그는 매사냥꾼이란 별명을 얻는다. 부대로 복귀 도중 헬기 사고로 북한으로 넘어가게 된다. 은신처에서 마을을 살피다가 고향의 어머니처럼 텃밭을 가꾸는 노인을 보게 된다. 그가 아는 어머니의 텃밭은 어울림이었다. 노인과 어머니가 자꾸 겹치고, 그는 텃밭의 의미를 곱씹는다.

그는 은신처를 떠나는 길에 노인이 논둑에 남긴 발자국을 만난다. 자기 발자국과 일치하는 걸 알게 된다. 그는 남북한에 두 명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그는 친아버지를 만났으나 이웃의 신고로 잡힌다. 억류돼 있으면서 기나긴 조사를 받는다. 그러는 중에 남한의 햇볕정책으로 남북은 화해 무드로 돌아선다. 그는 죽음을 면하고 몽골로 보내진다.

매사냥꾼

2부의 '초원'에서 주인공은 거주 제한과 통신 제한 속에 살아간다. 그는 한반도를 잊고 살기로 한다.

몽골 초원에는 매가 있다. 그는 다시 한번 매사냥꾼이 되기로 한다. 한반도에서는 비유적인 의미의 매사냥꾼이었지만 몽골에서는 말 그대로 매로 사냥하는 사람이다.

그는 매를 길들인다. 방식은 군대에서 군인을 훈련하는 방식이다. 매는 쉽게 길들지 않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부하를 훈련했던 대로 매를 계속 훈련해서 사냥매를 만들어낸다. 매를 지배하게 된 것에 만족한다. 계속 지배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매를 데리고 가을에 사냥을 나간다.

그는 가족과 벗들이 있는 한반도로 돌아가기로 한다.

'매사냥꾼'은 남북의 갈등과 대립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남에도 북에도 있는 텃밭의 이야기다. 오랜 세월 훈련된 매도 암수가 만나면 사냥꾼을 떠나간다는 애틋하고 풋풋한 이야기다.

텃밭은 잘 자란 채소(생명)를 이웃과 부담 없이 주고받으며 어울리는 공간이다. 이런 텃밭이 존재하는 한 남북은 내적으로 결코 둘일 수 없다는 게 작가의 믿음일 것이다.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어린 시절 보았던 텃밭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작가는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남북의 텃밭을 얘기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정범종 작가는 보성에서 태어나 전남대 경영대를 졸업했다.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새연'이 당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주4·3평화문학상(소설),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광주시립극단 희곡상 등을 수상했다. '칼과 학', '마스크 요정과 꼬마꽃벌', '봄날의 새연' 등을 펴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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