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장돌뱅이 시인'의 따스하고도 간절한 언어들

입력 2023.11.22 18:15 최민석 기자
장민규 시집 '그런 밤을 지나온 적이 있다' 출간
대상 표현 설득력·투시력의 힘
어려운 현실 긍정 담담한 고백
위태로울수록록 빛나는 시편들

시인은 방랑자다. 시인은 시간과 공간을 지나며 보고 듣고 느낀 감정들을 언어로 토해낸다.

순천 출신 장민규 시인이 첫 시집 '그런 밤을 지나온 적이 있다'(문학들刊))를 펴냈다. 그의 시는 인하는 힘이 놀랍다.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표현하는 설득력과 상식에 타협하지 않는 강력한 투시력의 힘이다. 그는 "중력을 무시하고/심연에서 끌어올린 물방울은/가끔 천둥소리를 낸다"며 "그런 밤을 지나온 적이 있다."('복선')고 읊었다.

이 시집의 출간을 진행한 편집자는 "원고를 받고 마음에 드는 작품에 포스트잇을 붙이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페이지마다 붙게 되니 이내 무의미해졌다"는 것.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최현주 교수(순천대)는 이번 시집을 두고 "그가 과연 최근 등단한 시인인가라는 우문을 반복하게 한다."고 감탄했다.

신축년에 집을 짓고 나서 시인은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어주구리(漁走九里)'로 비유했다. 기발하다.

"신축년에 신축을 하니 그럴듯했다./골목에서 밥이나 먹고 다니던 나였는데/살다 보니 어주구리(漁走九里)한 셈이다./생선 싸맨 신문지 비린내 나고/장미꽃 싸맨 신문지 향내 난다는/팔순 노모가 늘 하시던 말/가슴에 새기며 살았다./살다 보니 온몸이 새까매졌다./여기까지 온 게 덕분이다."('어주구리' 전문)

"살다 보니 온몸이 새까매졌다"고 고백할 만큼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의 시를 곁에서 가장 많이 봐온 이상인 시인은 시집 뒤의 표사에서 "장민규 시인은 이른 봄이면 오일시장을 돌며 묘목을 팔고, 가을이면 김장 고추를 파는 장돌뱅이 시인"이라고 썼다. 살다 보니 온몸이 새까매졌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온 게 (어머니) 덕분"이라고 한 시인의 담담한 고백에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라도 긍정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중 동트기 전 구멍 난 사각 페인트 깡통에 피운 화톳불 앞에서 새벽 장터의 삶을 꽃과 나비로 노래한 '새벽 불꽃'은 아름답고 빼어난 한 편의 서정시다.

김장하느라 얼어붙은 손이며, 새끼들 키우느라 온몸이 검버섯투성이 돼버린 이생들이 배추흰나비며 애기세줄나비, 호랑나비가 되어 불꽃 주위로 몰려드는 풍경은 아름답고 훈훈하다. 그들의 한기를 덥히는 공사장의 버려진 각목과 비린내 나는 생선 상자들이 "숯으로 잦아드는 순간에도/은박지로 감싼 고구마를 알처럼 품고 있다."는 묘사는 따스하다 못해 간절하다.

'장도리'를 통해 실천의 중요함을 노래한 동명의 짧은 시는 그 이름처럼 간명하고 다부지다. 이런 시는 어떤가. "내 가슴이 절벽이었을 때/나를 떠난 사람들은 거기서 뛰어내렸다./사람들이 뛰어내린 후/그 절벽 밑을 보면/가장 밑에 깔린 사람은 나였다."('절벽').

지금, 시인이 지나고 있는 길은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이다. 밝은 하늘이 아니라 해 질 녘의 "시커먼" "산" 같은 곳이다. 현실은 언제나 녹록하지 않다. 그는 "암벽 위에서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듯한 바위는 어쩌다 이렇게 된 우리처럼 위태로울수록 빛나는 절경이다."고 묘사했다.

장민규 시인은 순천에서 태어나 자난 2019년 '시에'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란 허접한 자유일 것이라고 노래하는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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