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아름답고도 슬픈 삶의 이면

입력 2023.11.27 17:52 최민석 기자
삶의 덧없음과 희망 윤회로 풀어내
모두가 자연으로 돌아갈 존재 각인
자신 앞에 놓인 나날들 용기로 관통

덧 없는 삶 속에도 희망은 오롯이 피어난다.

인간의 삶을 윤회의 미학으로 풀어낸 시편들을 모은 시집이 나왔다.

해남 출신 김경윤 시인이 제5시집 '무덤가에 술패랭이만 붉었네'(걷는사람刊)를 펴냈다. "세상의 모든 탄생에는/얼마간의 피 냄새가 묻어 있다"('여수 동백')라는 시인의 고백처럼 생이란 얼마간의 피로 시작하여 피로 종결되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무력감 또한 감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 보이는 삶들이 결국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통로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찾아온다. 태어난 이상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할 때 우리는 앞으로의 삶을 꾸려 갈 용기를 일순 잃어버린다.

그러나 시인은 인간사의 덧없음을 딛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아는 듯하다. 시인에게 그것을 알려 준 스승은 다름 아닌 자연이다.

팽나무가 "세상에서 와서 처음 만난/나의 스승"이라는 진술에서 미루어 보듯, 그의 시편들을 읽다 보면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으며 묵묵히 존재하는 자연에 대한 경의를 느낄 수 있다. 자연을 거닐며 시인은 세상사의 법칙을, 그 공연함을 실감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허공에 바람의 노래를 필사하는 작업이다.

생이 슬픈 이유는 한 사람의 인생이 상실이라는 슬픔의 사건으로 빼곡하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확정된 미래는 우리로 하여금 상실의 경험을 누적시킨다. 하나의 이별을 완전히 추스르기도 전에 찾아오는 여러 죽음들. 그러나 시인은 죽음 뒤에, 죽은 이들이 새로이 태어날 공간을 믿는 듯하다.

"별들은 지상에 내려와 꽃으로 피고/꽃들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모래를 삼킨 집')는 문장처럼 그의 시편엔 불교의 윤회 사상이 짙게 녹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자연으로 돌아와 나의 슬픔을 지켜보고 있기에, 시인은 자신 앞에 놓인 나날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필사하며 그는 속세 속에서 괴로워하는 한 생명에게 우리 모두가 자연으로 돌아갈 예지된 존재임을, 삶의 무용함이란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필연적 사건임을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져 세상을 대면할 용기를 얻게 되는 동시에 하염없이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배우게 된다.

시집에는 역사적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기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어쩌면 시인이 윤회에 대해 그토록 깊은 사유를 가지게 된 까닭은 죽은 이가 자연으로 다시 태어나 자유롭게 넓은 꿈을 펼치기를 바라는 산 자의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의 시편을 읽다 보면 가슴속에 켜켜이 쌓이는 희망이 밤의 창문을 통과하는 달빛처럼 아름답고도 슬프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나희덕(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인은 "김경윤 시인을 생각하면 '여여(如如)'라는 말이 떠오른다. 늘 한결같고 속되지 않은 마음을 지닌 사람, 어떤 꾸밈도 과장도 없이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 불가에서는 우주의 진리를 깨우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며 "이번 시집에는 차마 내색할 수도 없는 깊은 슬픔이 곳곳에 박혀 있다"고 평했다.

김경윤 시인은 "땅끝바다의 윤슬과 물마루 건너 붉은 옷자락을 적시며 오는 당신을 기다리던 그 저녁의 감정을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그 마음의 일을 시라는 이름으로 당신에게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9년 무크지 '민족현실과 문학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신발의 행자' '바람의 사원' '슬픔의 바닥', 시 해설서 '선생님과 함께 읽는 김남주' 등을 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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