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지리산 자락에 피어난 '짱구쌤'과 제자들의 행복

입력 2024.04.03 17:37 최민석 기자
이장규 교사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 출간
구례 용방초등 공모 교장 부임
제자들과 약속 담은 영상 화제
졸업 후 20년 만에 만난 사연
섬진강 흐르는 학교 4년 기록

스승과 제자는 서로 거리가 없었다. 선생님은 제자들을 친구처럼 생각했고 학생들은 스승을 가족처럼 여겼다.

제자들이 '짱구쌤'이라 부르는 이장규 선생은 교사 생활 28년째 되던 지난 2020년 구례 용방초등의 공모 교장이 됐다. 이장규 교사가 최근 펴낸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르네상스刊)는 운동장에서 지리산 노고단이 보이고, 울타리를 따라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짱구쌤이 보낸 4년간의 행복한 기록이다. 교문에서 전교생이 다 등교할 때까지 아침맞이를 하고, 교장실에서 예약한 아이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아이들과 실내화를 빨거나 전래놀이를 하고, 학교 곳곳에 아이들의 아지트를 만드느라 드릴을 들고 활보하는 짱구쌤. 세상에 없던 교장의 유쾌하고 자유로운 일상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들이 펼쳐진다.

"바람은 살랑이고, 햇살은 따습고…… 참 좋구나."

"짱구쌤이 옆에 있으니 더 좋아요."

그렇게 선생과 제자들은 20년 전 약속을 지켰다.

2024년 1월, '20년 전 약속… 다들 기억할까?'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졸업한 지 20년 만에 모교에서 다시 만난 담임교사와 제자들의 동화 같은 순간을 담은 영상이다. "가슴 뭉클하고 아름다운 순간" "따뜻하고 감동적" "낭만 그 자체" 등 영상을 보고 감동한 사람들의 댓글이 쏟아졌고, 언론사들의 취재도 이어졌다. 이 책은 한 달 만에 조회 수 50만이 넘은 화제의 영상 속 담임교사, 이장규씨가 펴낸 단행본이다. 유쾌하고 자유로운 '짱구쌤'과 가슴 따뜻한 아이들이 빚어낸 빛나는 순간들을 만나 보자.

아이들은 이장규 교사를 대부분 '짱구쌤'이라 부른다. 이름과 볼록한 뒤통수에서 떠올린 별명이다. 짱구쌤은 이 별명에 아이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1992년 임용된 뒤 한 해도 빠트리지 않고 학급문집 '어깨동무'를 펴내며 교실에서 지내다가 지난 2020년 구례 용방초에 공모 교장으로 부임했다. 어쩌다 교장이 되었다며 초보 교장으로서의 부담감도 컸지만, 운동장에서 지리산 노고단이 보이고 울타리를 따라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서 이런 호사를 누리나"라고 할 만큼 행복한 4년을 보냈다. 이 책은 그 4년의 기록이다.

짱구쌤의 하루는 분주하다. 아침마다 교문에서 등교하는 전교생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침맞이를 하고, 교장실에서 예약한 아이들과 차를 마신다. 일주일에 네 시간은 '짱구쌤 수업'을 하는데, 전래놀이, 실내화 빨기, 서시천 산책하기, 그림책 읽어 주기, 비 오는 날 운동장 맨발로 걷기까지, 수업이라기보다는 아이들과 즐겁게 놀면서 배우는 시간이다. 틈틈이 '임가이버' 주무관님을 도와 오래된 정자 리모델링을 하고, 운동장에 트리하우스를 짓고, 노고단을 보며 쉴 수 있는 데크 쉼터를 만들고, 학교에 필요한 것들을 고치거나 만드느라 드릴을 들고 학교 곳곳을 활보한다. 퇴근 후에는 학교 가장 구석에 있는 관사에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손편지를 쓰다가 손전등을 들고 교정을 둘러본다. 세상에 없던 교장이다.

짱구쌤이 만난 빛나는 순간들

아이들은 짱구쌤을 만나면 깜짝 놀랄 말, 재미있는 말을 자주 네며 스스럼 없이 대한다.

아이들을 돋보이게 하는, 좀 만만한 선생이 되고 싶다는 짱구쌤. 과연 짱구쌤이라는 별명에는 마법의 힘이 있는 것 같다.

짱구쌤이 바라는 학교는 세상에 나가기 전 주인공을 경험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곳, 모든 것에 앞서 공평한 곳, 모두가 더 나은 사람으로 함께 성장하는 곳이다.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 짱구쌤은 국기 게양대에 학생들의 부모 나라 국기들을 모두 걸고, 매일 아침맞이를 하며, 아이들과 실내화를 빨고, 학교 곳곳에 아이들의 아지트를 만든다. 그리고, 용방초는 교육부 '학교 단위 공간혁신 사업' 공모에 지원 선정됐고, 2년 후 새로운 학교 건물이 완성된다. 학교 건축에 대한 바람을 남김없이 쏟아 낸 공모 도전기와 모든 용방 가족이 3년간 머리를 맞대고 만든 학교 설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세상에 없던 학교는 그렇게 모두의 바람을 담아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꿈꾸고 원하며 반드시 만들어야 할 학교의 풍경이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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