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찰진 문장으로 빚은 삶의 이면들

입력 2024.10.27 14:34 최민석 기자
무등일보 기자 출신 이광이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
중년에 휘몰하진 고독과 쓸쓸함
노모와 함께 보낸 순간의 기록들
일상 소란 속에서 보이는 께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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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이 작가는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탈모로 머리카락이 절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자신을 '오할스님', 호를 '반승(半僧)'이라 불렀다.

그의 글은 예리한 통찰력과 능청스러운 찰진 단어들이 돋보인다.

무등일보 기자 출신인 이광이 작가가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삐삐북스刊)를 펴냈다.

이 산문집은 한겨레 '삶의 창'에 연재하며 인기를 끌었던 작가의 글과 10여 년 동안 써 놓은 글들을 한데 모은 결과물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종일 열심히 뛰어다닌 양말 속 발가락의 구릿함으로 승화시키고 '탱탱하던 삶의 테두리가 서서히 오그라드는 그 궁한 틈'을 구성진 언어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작가는 인생의 늦가을 중년의 마음에 쓰나미처럼 휘몰아친 고독과 쓸쓸함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다. 또 본가로 내려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노모와 함께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순간의 다정한 기록이기도 하다.

길이도 사연도 제각각인 글은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고 어처구니 없게 허망하다. 밤새 베갯잇에 안녕을 고하고 야멸차게 떠나버린 머리카락들을 향한 '헤어 소수자'의 애달픈 몸부림처럼 뻔뻔스럽고, 노인들의 집 문고리에 걸려 매일매일 안부를 묻는 야쿠르트 담은 비닐봉지처럼 다정하다. 과거와 현재, 인간의 나약함과 힘, 유머와 엄숙함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탐구하는 이야기들은 가벼우면서도 심오하고, 단순하면서도 풍성하다.

삶의 순간들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종종 서둘러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 책은 은행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노화에 대한 고요한 성찰 등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 속으로 읽는 이를 이끈다.

작가는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비로소 보이는 찰나의 깨달음을 태연하게 건넨다.

그는 행복이란 '퇴근하고 소주 한 잔 하는 것, 밥 먹고 담배 한 대 깊게 피우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그제야 보이는 찰나의 순간을 성찰하도록 한다. 그러고는 그 순간 느낀 위안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불교에서 육바라밀은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초월의 경지로 가는 수행 방법이라고 하는데, 삶 자체가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수행 과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문득 베토벤의 웅장한 연주를 들으며 이미자의 노래를 흥얼거린다면, 이것이 바로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순간이 아닐까. 뻘뻘뻘뻘 사방으로 도망치는 펄 밭의 칠게처럼 우리네 삶 역시 종잡을 수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만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그냥 지나쳤을 소소한 일상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감칠맛 나는 문장이 빚어낸 기막힌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책 끝에 수록된 글 '엄니 시집'에는 지난 2022년 3월 타계한 모친 최봉희 시인에 대한 일화와 그리움을 담았다.

이광이 작가는 4·16세월호 참사 이후 생전 어머니가 쓴 시들을 모아 시집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를 펴낸 사연을 전한다.

'세월호 참사 1년 기록 시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집은 4·16을 잊지 말자는 뜻을 담아 가격을 4천160원으로 정해 세상에 나왔다.

이광이 작가는 "글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은 필연적으로 성찰이며 성찰이 덜 익었을 때는 부끄러움일 것"이라며 "성찰은 시계의 초침처럼 늘 새롭고 끝이 없는 것이라 그것으로 부끄러움을 가리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등일보 공채 3기 기자를 거쳐 현재 한겨레신문에 '이광이 잡녑잡상'을 연재 중이다.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책 '절절시시'를 썼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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