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은 과거를 '잊고' 넘어서는 것이 아닌, 역사의 아픔을 뒤로 넘기면서도 주워 담는 에너지와 희망의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30일 만난 김준태 작가는 자신의 첫 소설집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도서출판 b)의 발간을 알리며 소설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단언했다. 1980년 5월 광주를 알린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등단 50여 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은 5·18민주화운동의 상처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서사가 담겼다.
작가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의 만행을 목격한 후 그 참상과 광주의 부활을 노래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를 발표하며 강제 해직 등 고난을 겪었다.
그는 1995년 계간 '문예중앙' 여름호에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라는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이야기'는 시와 소설이라는 장르로 구분되지 않을 수 있으며 '시와 소설은 한 몸'임을 보여줬다. 소설가 이호철 선생이 그에게 "시인이 '소설'까지 쓴다면 우리 소설가들은 뭘 먹고 살지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시인의 생각과도 조우하는 덕담이었다.

이번 소설집은 중편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와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라는 제목의 장편 액자소설로 구성됐다.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작가의 분신인 허만중씨가 화자로 등장해 광주와 서울, 미국, 베트남, 베를린 등 세계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를 망라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가 '액자 속의 액자'처럼 들어 있는 90편의 단편 액자소설로 구성돼 있다.
액자소설은 대부분의 소설 길이가 5분에서 10분 사이에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을 갖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책으로는 한 편당 3~5쪽에 이르는데 모두 90편의 작품이 총 350여 쪽에 걸쳐 실릴 정도로 묵직하다.
작가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분량을 조절한 일종의 콩트"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소설이 '밥'이 된다는 생각에서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처럼 바지런히 이야기(서사)를 찾아내고 만들어냈다"며 황막한 세상 속에 괜찮은 이야기를 풀어 넣어주는 것 또한 문학의 역할임을 강조했다.
소설집은 1980년대라는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며 광주를 담고 있으면서도 한국과 세계 곳곳에 녹여내고 있다. 작가는 광주의 정체성에 대해 '생명, 평화, 자비를 지키기 위한 절대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편 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에는 화가, 스님, 시인 등 다섯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무등산 중머리재까지 함께 오르지만, 정상을 상징하는 서석대까지는 오르지 못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서석대에 오르지 못한 것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못 찾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산행에 실패한 주인공들이 길을 찾지 못한 이유를 "이들의 손에 오월의 피가 묻어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1980년 5월의 상처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집에 실린 그림이 그의 아내인 이명숙 여사의 삽화라는 것이다. 작가는 "남편의 글에 담길 그림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일 것이고, 그 일을 부부가 이 소설집을 통해 해냈다"며 "이 책을 아내에게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표지에도 글쓴이와 그림 그린 이의 이름이 나란히 배치돼 그 의미를 더한다.
김준태 작가는 1948년 전남 해남 출생으로 1969년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집 '참깨를 털면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으며, 현재 금남로의 작은 공부방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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